서울모드 졸업후 가톨릭대학교로 편입하기까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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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9.04.06 |
처음 패션이란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입니다. 나이키의 에어조단이 좋아서, 단지 운동화가 좋아서 그 관심과 호기심이 남보다 조금 지나쳐 고교1학년 때, 친구들과 musinsa.com을 만들고, 옷이 좋아서 옷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의학도의 길이 걸으려 했으나 대입 3수 실패라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후기지원까지 낙방하였고, 정말 막막했습니다. 고교시절 아과였기에 디자인계열의 학과는 지원조차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홍대에서 파티가 있었고 그 파티에서 한 여성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서울모드의 학생이었지요. 구 분에게 서울모드를 접하게 되었지요. 그이후 서울모드의 신입생이 되었고, 어둠속을 헤매던 저를 일으킬 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서울모드의 학생들은 몰라도 저에게 있어서 서울모드에서의 2년은 무척이나 길었습니다. 1인자가 되지 못하면 1인자를 제일로 많이 알고 설명할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무식하게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했습니다. 일당 3만원의 패션쇼진행요원에서부터, 패션쇼 포토그래퍼, 잡지사에디터, 일당 100만원의 vj까지!! 정말이지 많은 일을 했습니다. 수십번의 인턴 낙방끝에 소규모 여성복업체의 막내 디자이너도 해보았습니다. 저렇게나 많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 불과 서울모드 입학하여 1년만에 이뤄낸 소기의 성과 였습니다. 그때 당시 " 정훈아 너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 렂눈 멀아 재알 먾아 제 귀에 들렸던 말이지요. 서울모드에서의 수업을 통해 조금씩 디자인과 레이아웃실력을 길러냈으며, 복식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시작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졸업까지 1년 밖에 남지 않은 것을 알게되었고, 남은 1년으로 배움의 갈증이 해소 되지 않을것으로 판단, 편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경쟁률이 100:1에 육박하는 편입 실기를 과감히 포기한채 비 실기 전형인 영어시험을 보기로 결정하였고, 2학년 3월부터 영어 공부에 돌입하였습니다. 학기 중이었기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에는 학원을 갈수가 없었습니다. 3월과 5월은 영어 공부에, 4월과 6월은 학교에 전념하였고, 방학기간인 7월 8월에는 정말이지 코피 터지게 공부하였습니다. 당시 저의 일과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학원에서 새벽 5시 30분까지 가서 오전 9시 30분까지 공부, 10시까지 회사출근 오후 6시퇴근, 7시부터 밤에 12시까지 영어공부 새벽1시까지 귀가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정말이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가장 먼저 합격의 연락이 온 고려대학교 러시어학과를 시작으로 최종적으로 카톨릭대학교 의류학과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카톨릭대학교를 다니며, 서울모드때 배운것보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아디다스코리아에서 진행중인 신규구두브랜드와 코오롱 스포츠에서 준비중인 신규아웃도어브랜드의 패션디자이너로 있으며, 조금의 영어실력과 디자인실력을 인정 받아서 강남역에 위치한 중앙교육 편입영어학원 unichange에서 교재편집도 하고 있습니다. 패션은 passion이라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 저는 학점이 좋지 않았고, 장학금도 받은적이 없지만,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정으로 가지고 현재에 미래를 꿈꾸는 젊은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것을 하기위해서는 하기 싫고 하찮은 것도 해야했습니다. 보기에 화려하고 , 빛나는 것이 패션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다루는 재봉틀의 기름때역시 자기 손으로 닦아내고, 실슶5ㅣㄹ 바닥의 지저분한 실뭉치를 직접 집어서 버리는 일이 싫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물며 패션디자인학과 분들은 마음속의 패션디자이너의 자긍심을 가지시되 겉으로 자만하지 마시고 항상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불과 제가 다니던 1년전과도 너무나 다른게 지금학교가 발전하였으니, 학교에서의 활동을 열심히 하시기 바라며, 후배님들과 같이 패션계에서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